방 분위기 좀 바꿔 보겠다고
이번 학기부터 집에서 화상 미팅이 늘면서 책상 정리를 조금씩 하게 됐습니다. 원래는 실험실이나 스터디룸에서 주로 생활했는데, 최근엔 아예 제 공간을 꾸며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작은 변화 중 하나가 조명 거울이었습니다.
석사 1년 차인 친구가 “이거 진짜 잘 샀다”며 인스타 사진을 보여줬는데, 은은한 조명이 돌면서 모서리 부분이 곡선으로 마감된 거울이었습니다. 방 안에 놓기만 해도 분위기가 바뀔 것 같았고, 실제로 꽤 예쁘기도 했습니다. 저는 같은 제품을 검색했고, 그보다 조금 더 싼 가격으로 올라온 중고 매물을 찾게 됐습니다.
마감 임박, 가격은 반값
판매자는 방 정리를 하다 한 번도 안 쓴 거울을 판매한다고 했습니다. 택배만 가능하며, 포장 상태 그대로라 파손 걱정은 없다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사진 속 거울은 밝은 조명 아래서 찍혀 있었고, 플라스틱 포장이 겹겹이 둘러진 상태였습니다.
무엇보다 가격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정가 9만 원짜리 제품을 4만 원에, 게다가 배송비도 포함된 가격으로 제시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결제하지 않았겠지만, 친구도 같은 제품을 잘 쓰고 있고, 게시글 설명도 너무 자세했기에 별 의심 없이 거래를 진행했습니다.
계좌는 본인 명의였고, 입금 직후 “내일 발송 예정입니다”라는 답장이 왔습니다. 깔끔하게 마무리된 느낌이었고, 저는 잠시 후 카페에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조회되지 않는 송장, 연결되지 않는 사람
다음 날 오후까지 송장이 오지 않아 문의를 보냈지만, 이미 보낸 메시지는 읽히지 않았습니다. 다시 접속해 보니 판매자의 프로필이 비공개로 전환되어 있었고, 게시글도 삭제된 상태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일이 바빠 늦는 것이라 생각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친구에게 상황을 이야기하자 “혹시 먹튀위크 검색해 봤어?”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그제야 저는 먹튀위크를 열어 판매자 계좌번호를 검색해 봤고, 며칠 전 등록된 신고 글이 있었습니다. 제목은 ‘인테리어 조명 거울 판매 사기’였고, 피해 내용이 제가 겪은 것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계좌번호 끝 네 자리가 동일했고, 메시지 내용까지 복사한 듯했습니다.
환불은 없었고, 글만 남았다
입금한 지 하루 반이 지나 있었고, 이미 일반 이체로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은행 측에도 문의해 봤지만 이미 자금이 출금돼 회수가 어렵다는 답만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먹튀위크에 저도 같은 피해를 봤다고 글을 추가했습니다.
“지금은 4만 원이지만, 나중에는 더 큰 금액이 될 수 있다”는 다른 피해자의 글을 읽으며, 어딘가 나도 이 말에 보탬이 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명 대신 남은 그림자
지금 제 방 책상 위에는 거울이 없습니다. 대신 작은 스탠드 하나가 켜져 있고, 가끔 그 불빛 아래에서 먹튀위크에 남긴 내 글을 다시 확인해 보게 됩니다.
이후에도 가끔 중고 사이트에 접속하게 되지만, 계좌번호를 검색하거나, 너무 자세한 설명이 붙어 있는 게시글은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됩니다. ‘빨리 사야 이득’처럼 들리는 말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반응하려 합니다.
그 거울이 진짜였는지는 여전히 모릅니다. 다만, 그걸 보내겠다고 말한 사람은 거짓이었습니다. 그걸 일찍 알아차렸다면, 제 방에도 조명이 켜졌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비록 어둡지만, 대신 더 천천히, 더 조심스럽게 살피는 눈이 하나 생긴 것 같기는 합니다.